계몽사상 탄생
천동설을 믿었던 사람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교회의 가르침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는데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것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런 사고전환에 영향을 준 인물은 뉴턴과 데카르트였다.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관과 무엇이든 의심하는 데카르트 합리주의는 사람들이 과학과 이성으로 새로운 사고를 하게 만들었다. 지동설과 만유인력의 법칙등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실제로 증명하고 관찰하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들로 인해서 당연시 여기던 사회구조를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생각하는 힘인 이성을 통해서 더 나은 사회를 꿈꾸게 되었고 이런 현상으로 계몽사상을 꽃피웠다. 계몽사상은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생각과 이성의로 인간생활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생각이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낡고 관습에 빠진 중세에서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관찰과 분석을 통해서 불합리함을 버리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계몽사상으로 자연과 우주는 물론 사람이 사는 사회의 모습은 왜 이런 모습인지 왜 싸우고 갈등을 일으키는지 국가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사회와 국가가 만들어진 역사적 논리적 근거를 밝히는 사회 계약설이 탄생했다. 프랑스 볼테르는 계몽주의 사상가였다. 그는 낡은 사회의 부당함을 부수기 위해서 관습에 찌든 유럽사회를 풍자하는 시, 소설, 희곡, 수필 등 750편이 넘는 작품을 썼다. 특히 대표작품인 관용론에서 가톨릭 교회의 종교적 박해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특히 볼테르는 영국에서 엄청난 사건인 청교도 혁명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프랑스로 돌아온 볼테르는 더욱더 프랑스 사회를 비판했고 사람들이 무지에서 벗어나야 사회를 바꾼다는 생각에 백과전서를 만드는 일을 했다.
사회계약설
계몽사상이 사회에 뿌리 내릴수록 사람들은 국가 역할을 고민하게 됐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영국에서 발생한 명예혁명으로 시민의 힘으로 왕정을 무너뜨린 것을 것을 보고 높게 평가했다. 로크는 그 모습을 보며 국가와 국민의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깊게 고민하며 인간은 원래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이다. 국가는 인간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인권이 있는데 이걸 천부인권이라고 누구도 해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로크의 말에 환영했다. 추후 로크의 사상은 프랑스혁명과 유럽 시민혁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 철학자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제도, 문화를 버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서 인간의 참된 본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인위적인 불평등이 사라진다고 했다. 인위적인 불평등이란 땅을 가진 사람과 땅을 가지지 않은 사람 사이에 생기는 불평등을 말한다. 그는 개인ㅇ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려면 자신의 권리를 공동체에 양도하고 다수의 의지에 복종하는데 동의하는 사회 계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루소의 사상은 볼테르의 계몽사상과 함께 프랑스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에도 영향을 끼쳤다.
고전주의 문학
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정신을 받아 17세기 계몽사상과 어우러져 이성을 중시한 문학의 경향을 말한다. 고전주의는 시민들이 주도해서 새로운 문화로 만든것이다. 과학, 수학, 철학에서 보여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고전주의 문학에서 드러난다. 특히 고전주의 문학의 특징은 희곡에서 잘 나타나있다. 희곡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감동을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장르였다. 프랑스 고전문학은 영국과 독일 또는 전유럽에 영향을 주었다. 18세기 영국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대니얼 디포는 유명한 로빈슨 크루소라는 작품을 썼다. 또한 영국의 작가이자 성직자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작품인 걸리버 여행기가 있다. 이 작품 안에는 당시 영국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 정신이 담겨있다. 이 시기에 영국이 다른 유럽국가보다 뛰어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영국이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빨리 자유를 만끽했기 때문이다. 18세기 영국은 봉건 귀족 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바뀌고 있었고 국민의 자유로운 생각과 사사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으로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역할을 하게 된다.